▲ 준정부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지난달 10차변론에 들어갔다. 건보공단은 지금까지 진행된 변론에서 흡연과 폐암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해 왔다. 그런데 건보공단의 소송에 바로 앞서 정부와 KT&G는 폐암말기 암환자들이 제기한 15년간의 재판에서 함께 승소했었다.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지난 2014년 4월 시작된 법정공방은 지난달 30일 10차 변론이 진행됐다. 원고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피고는 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 등 세 곳이다.
이번 재판은 공공기관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첫 소송이다. 건보는 국내 담배 시장점유율 93%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세 개사를 대상으로 53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537억원은 흡연력 20갑년·30년 이상 흡연환자들에 건보가 부담한 진료비 규모다.
건보는 “흡연 피해자 개인이 거대 자본·조직력을 가진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 담배의 결함과 위법성 및 질병과의 유관관계 등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이번 소송전의 참여 계기를 밝힌 바 있다.
15년 재판 최종심서 정부·KT&G 승소…나흘 뒤 준정부기관 건보공단 KT&G에 소 제기
1999년 폐암말기환자들과 가족 등 30여명은 KT&G와 정부 등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간 해당 소송전은 무려 15년간 진행됐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담배 설계·제조·표시에 결함은 없었다. 해로운 것을 알면서 담배를 피운 것은 원고의 선택이었다”며 “병 발생의 책임을 담배회사에 묻기 어렵다”고 판시, 정부와 KT&G 손을 들어줬다.
쟁점이 된 것은 폐암의 원인이 담배였느냐는 것이었다. 정부와 KT&G 측은 개인력 등을 지적했다. 담배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폐암의 원인 중 하나일 순 있으나 담배가 전적으로 병을 유발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당 판결이 내려진 나흘 뒤 건보가 움직였다. 건보는 연세대학교 지선하 교수팀과 함께 국민 130만명을 대상으로 19년간 추적한 연구결과와 국립암센터 암환자 등록자료, 흡연력에 따라 지출된 10년간의 건보 부담금 산출자료 등 빅데이터를 근거로 KT&G 등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소에 나섰다.
앞서 개인들이 진행한 패소를 의식한 듯 발병 증상을 한정지었다. 폐암 소세포암, 폐암 편평상피세포암, 후두암 편평세포암 등이다.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역학회 연구결과에 따르면 흡연은 이들 세 종류의 암의 기여위험분율(특정요인에 노출된 집단의 암 환자 중 해당 요인이 직접 작용했다고 간주되는 비율)은 각각 95.4%, 91.5%, 81.5%에 달한다.
|
|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또 제조물책임법 3조 1항에는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담배는 4800여종의 화학물질과 69종의 발암물질을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세계 공중보건문제 1위로 지정했다. 건보는 현재 흡연으로 인해 매년 1조7000억원의 진료비가 지출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순하고 상쾌’ 광고하는데 개인문제 치부…외국선 잇단 담배사 패소 속 ‘한국은 무패’
피고 3개 담배회사는 담배와 폐암과의 인과관계가 부족해 제조·판매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경고문구 등을 통해 담배의 위험성을 알렸음에도 흡연자들이 자발적으로 담배를 선택했다”며 “또한 암 발생 원인이 꼭 흡연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가 불충분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담배회사가 소비자의 흡연을 유도하는 제품을 줄곧 생산함을 지적한다. 미국 사우스캘롤라이나대학교 정신·행동의학과 마이클 커밍스(63) 교수는 “담배회사들이 맛·흡입감 등을 개량한 제품을 꾸준히 출시해 금연을 막고 있다”며 “흡연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담배광고 금지 및 제한법 9조, 관련 시행령 14조 등에 의거해 담배의 TV·지면 등의 광고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법은 미성년자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금연을 계도하기 위해 설치된 법은 아니다. 일선 소매점의 경우 다양한 문구의 담배광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피고 3개사 중 한곳이자 과거 전매청에서 출발해 민영화된 국내 최대 담배업체 KT&G는 현재 ‘처음 만나는 상쾌함’, ‘완벽한 부드러움’ 등 문구를 앞세워 신제품 및 개량제품의 광고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광고 하단에 경고문이 작성돼 있지만 현혹적인 문구와 화려한 이미지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편의점을 찾은 김아란(25)씨는 “외국처럼 담배 용지에 환자 사진 등을 넣어서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지만 담배 성분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하다’, ‘상쾌하다’ 등 담배의 해로움을 알리지 않은 광고문구를 쓰는 것은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시중 편의점 계산대에서는 담배광고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자유롭다’, ‘유일무이하다’ 등 고객의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광고문구들이 흡연자들의 욕구를 자극했다. ⓒ스카이데일리
건보 역시 이점을 지적한다. 유해성이 입증된 담배판매를 계속하기 위해 담배 제조사들이 첨가물 등을 추가해 고객 이탈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업계가 제조상의 기밀 등을 이유로 첨가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업계가 인정하는 첨가물은 박하 등 향료류, 설탕, 코코아, 물 등이 전부다. 반면 함유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암모니아·아세톤 등 수 백 여개 첨가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담배 관련 소송은 비단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1997년 미국 법원은 담배의 유해성을 처음으로 법정에서 인정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필립모리스 등 담배업체들은 2600억달러(현재환율기준, 약 297조원)를 46개 주정부에 지급해야 했다. 이는 역사상 최고 민사 배상금이다.
해당 판결 후 미국은 물론 국외에서도 담배에 대한 법원의 인식은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담배손해배상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2000년 위헌판결을 받기도 했으나 곧바로 ‘담배손해 및 치료비배상법’이 발의됐고 지난 2005년 9월부터 효력이 발생된 상태다.
1999년 미국 오레건주 폐암 사망자 유족들은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800억원이 넘는 배상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담배회사들에게 156억캐나다달러(약 13조원)의 배상명령이 내려진 바 있다.
담배 유해소송은 지난 1954년 미국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후 1992년까지 40년간 약 800건의 소가 제기됐지만 번번이 담배회사가 승소했다. 소를 제기했던 개인들은 담배회사의 막강한 자본력과 조직력 등에 무릎 꿇어야 했다.
그러다 담배회사의 운명이 점차 바뀌게 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담배업체들이 1963년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과 니코틴 중독성의 위험성을 실험을 통해 알게 됐지만 묵인했다는 사실이 한 내부 고발자에 의해 공개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담배회사의 승리로만 기록돼있다. 건보와 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 간 11차 변론은 오는 12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