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사진 한 장이 있다. 구형 고속버스 뒷자리에 설치된 작은 함이 무엇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정체를 알고 있는 이들은 함구한 채 어린 나이의 누리꾼들의 추측이 난무했다. 정답은 간단했다. 재떨이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불과 20~2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속버스에서 흡연자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하철플랫폼과 기차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흡연은 가능했다. 식당은 물론 사무실은 아예 당연했다. 24시간 전쟁을 하는 신문사 편집국의 기자들은 담배를 연신 물어대고 기사를 써 늘 담배연기에 찌든 채 생활해야 했다. 지금과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 이처럼 얼마 전 일이다. 실내와 공공장소 등의 금연구역 지정이 본격적으로 지정된 것은 간접흡연의 폐해가 알려지면서부터다. 폐암의 원인으로 규정됐던 흡연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 그리고 불특정 다수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금연은 사회적 화두가 됐다. 이때부터 정부는 금연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금연구역이 대폭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흡연자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담뱃값이 대폭 오른데 이어 동시에 피울 공간마저 줄어들자 흡연자들도 참다못해 불만을 표했다. 담배를 판매한 주체가 정부면서 막상 흡연에 대한 책임을 흡연자들에게만 돌린다는 볼멘소리였다. 또한 현행 금연구역 확장정책이 결코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많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의 이슈포커스 시리즈로 ‘담배’를 선정하고 정부 정책의 모순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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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연구역이 점차 늘어나면서 흡연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필 곳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무조건 금지시키는 바람에 빌딩사이와 골목길 등으로 쫓겨나는 처지라는 것이다. 비흡연자들도 흡연구역을 설치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금연구역만 늘렸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충분한 흡연구역 확보 후 나머지 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정책일 것이라는 여론이다.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테헤란로 이면도로에서 만난 회사원 박승철(49·남) 씨는 과거를 이처럼 회상했다. 현재 그가 담배를 태우는 곳은 예전의 습관을 못 버려서인지 금연구역이다. 버젓이 ‘흡연 및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그는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박 씨는 “대로변은 각 건물마다 금연구역이라며 필 수 없게 하고 골목도 마찬가지 이유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데 대체 어디 가서 담배를 피울 수 있겠느냐”며 “옆 건물의 경우 흡연구역이 마련됐지만 외부인 출입을 엄금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담배를 피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박 씨 외에도 여럿이 담벼락을 따라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즐비한 테헤란로 르네상스호텔사거리부터 포스코사거리까지 이면도로는 비슷한 양상이었다.
테헤란로를 따라 즐비한 건물 후면인 이곳의 대다수는 금연구역이라는 표지가 선명했으나 흡연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 점심시간 무렵이 되자 더욱 많은 인파가 밖으로 나와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태우며 점심메뉴를 상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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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크게보기 클릭 자료: 서울시 [그래픽=이은혜] ⓒ스카이데일리 |
대놓고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흡연자들이 골목으로 몰렸고 자욱한 담배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금연해줄 것을 당부하는 표식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상인은 “전혀 계도되지 않으며 실효성 또한 전무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정은 사무실이 밀집한 강남역 일대나 여의도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특히 강남역 삼성그룹 본사 일대는 강남대로와 이면도로를 잇는 빌딩 사이 골목마다 흡연자들로 가득했다. 간혹 이곳을 통과하는 비흡연자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참으며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숨을 참고 골목을 빠져나오던 회사원 박미정(27·여) 씨는 “대다수 빌딩 사이 골목들이 이런 풍경이라 돌아가기도 애매해 그냥 숨을 참고 통과하는 것이다”면서 불만을 토해냈다. 그런데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직장인은 “뒤편 이면도로도 차량과 사람 통행이 잦아 담배를 피울 수 없어 이곳 아니면 피울 곳이 없다”고 상반된 하소연을 털어놨다.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불만족 ‘무차별 금연구역’…출구없는 흡연자 결국 아무곳이나
이 같은 폐해를 접한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 모두 무리한 금연구역 확대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금연구역이 대거 증가하면서 골목 등 비흡연자도 드나들어야 하는 공공 공간에 흡연자들이 몰리게 됐고 이 탓에 결국 흡연자는 눈치를 보고 비흡연자는 불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7월 말 기준 서울시내 금연구역은 총 1만6984개다. 1764개는 서울시가 지정·주관하는 금연구역이며 나머지 1만5220개는 25개 구가 설치한 금연구역이다. 종류별로는 가로변 버스정류소가 7005개로 가장 많고 이어 어린이집 및 반경 10m(2595개), 지하철역 출입구(1673개) 등이 뒤를 이었다.
▲ 포스코사거리 인근 이면도로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대로변과 빌딩 주변이 금연화 됨에 따라 흡연자들이 뒷골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점 앞에서는 예닐곱명의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웠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자 모두들 원망 섞인 목소리를 내며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우리도 필 곳이 부족하다”며 항변했다. 사진은 익살스러운 흡연금지 안내판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또 도시공원, 초·중·고 학교절대정화구역, 유치원 절대정화구역, 어린이놀이터, 아동복지시설, 마을버스, 택시정류소, 일부 거리, 광장, 주유소충전소, 하천, 공공용지, 마을마당, 아파트 등이 시 조례안에 담긴 금연구역이었다. 이 밖에 일정규모 이상의 식당·빌딩 등 대다수 공간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금연구역 지정 등에 대해 흡연자들도 “당연히 금연구역이어야 할 공간이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금연구역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해 흡연구역 역시 일정지역에 확보돼야 하지만 이에 대한 당국 차원의 배려는 너무 부족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강남역 ‘흡연골목’에서 만난 흡연자 조태현(31·남) 씨는 “풍선효과란 말이 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불룩해진다는 말인데, 결국 대다수 지역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마당에 흡연자들이 이렇게 흡연골목에 모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 씨는 “여기서 피는 흡연자들도 이곳을 지나야 하는 비흡연자들 모두 불편하긴 마찬가지다”며 “담배를 안 피우는 분들은 괴로운 통행이 돼야 하고 우리는 내 돈 주고 피는 담배를 눈치 보며 미안한 감정을 갖고 피우게 된다”고 말했다.
비흡연자 정선희(30·여) 씨는 “차라리 일정규모 이상의 건물들과 대로 곳곳에 별도의 흡연구역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모두를 위한 정책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흡연구역을 증설하고 그곳들 외의 모든 공간을 금연화 한다면 금연구역도 흡연구역도 아닌 곳에서의 간접흡연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씨는 “담배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연구역을 늘리는 정책은 유치하고 전형적인 탁상 위에서 내놓은 발상이라 생각한다”며 “흡연자들이 담배를 마음껏 피울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이 외 지역에서의 흡연을 금지한다면 충분히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연 지향 정부 맞나…담배 팔아 세금장사 배불린 정부 ‘흡연자 위한 배려 없어’
▲ 자료: 보건복지부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테헤란로 이면도로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금연구역을 늘린다는 정부가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행태는 올바른 것이냐”면서 “누구나 담배가 해로운 것은 알지만 이를 판매해 이익을 얻는 곳 역시 정부가 아니냐”고 힐난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담배제조사는 KT&G다. 이곳의 전신은 전매청이다. 전매청은 국내에 담배를 공급하던 정부기관이었다. 지난 1987년 4월 폐지돼 한국전매공사로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한국전매공사의 후신이 KT&G다.
KT&G의 최대주주는 8.59%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구조다. 앞서 정부가 이익을 얻는다는 지적은 세금 때문이다.
지난해 1월 1일을 기해 담뱃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대폭 올랐다. 당시 정부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함을 목적으로 밝혔으나 1년10개월여가 흐른 현재 정부가 막대한 세수확보를 올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0원의 가격상승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전체적인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들었으나 단번에 이 같이 담뱃값을 올린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지난 1989년 담뱃값은 600원이었다. 이후 1994년 100원 상승했으며 이후 한 두 해를 거듭할수록 100원~200원씩 담뱃값이 상승했다. 지난 2004년 2500원까지 오른 담뱃값은 이후 10년간 유지되다가 2015년 4500원으로 뛰어 올랐다.
▲ 강남역·테헤란로·여의도 등 주요 사무실밀집지역 이면도로와 빌딩 사이사이는 현재 암묵적인 흡연공간으로 탈바꿈한 상황이다. 이곳을 지나는 비흡연자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별도의 흡연공간 필요성이 비흡연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금연 확산 의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스카이데일리
이 기간 정부가 명분삼은 것처럼 흡연율 역시 하락했다. 특히 남성흡연율이 대폭 감소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8년 66.3%에 달했던 19세 이상 남성흡연율은 2014년 43.1%를 기록하며 절반 남짓한 하락세를 보였다. 동 기간 남·녀 전체 흡연율 역시 35.1%에서 24.2%로 감소했다.
하지만 담뱃값이 대폭 오른 지난해부터 현재까지의 흡연율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상승 후 일시적으로 대폭 낮아지는 듯 했으나 금연에 실패한 애연가들이 재차 증가하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정부만 배불렸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테헤란로 이면도로에서 만난 직장인 김동민(43·남) 씨는 “담배를 팔아 흡연자를 양산하고 덩달아 세수확보까지 거뒀던 정부와 지자체가 금연구역을 늘려가면서 제대로 된 흡연구역 확보를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진정 국민건강을 생각한다면 세수를 포기한 채 담배를 금지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흡연구역을 확보해 적어도 뒷골목으로 몰린 흡연자들로 인해 피해를 받는 비흡연인들을 구제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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