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강남 서초동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 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날이다. 역사적으로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은 것은 네 번째이며,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나선 것 또한 초유의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12월 2일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11월 1일 ‘4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대검에 자진 출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4월 30일 대검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스카이데일리가 박 전 대통령의 출두 당일 보수 단체들의 집회 현장과 표정,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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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조사받는 당일 보수단체 회원들은 일제히 침통함에 빠졌다. 그들의 참담한 표정은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국민 누구나 갖고 있는 똑같은 애국의 심정으로 다가와 가슴이 먹먹했다. ⓒ스카이데일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오전 9시35분 서초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오후 11시40분까지 14시간에 이르는 조사를 받았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약 7시간 동안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했고, 22일 오전 6시 55분께 조사실에서 나와 삼성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총 21시간 30분 가량 이나 조사가 진행된 셈이다. 이는 역대 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다. 이날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뇌물수수·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혐의의 사실관계와 경위 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린 대통령의 몰락 때문이 아니다…나라가 망하는 위기에 온몸으로 사투”
사상 첫 임기 중 탄핵 그리고 검찰에 까지 출두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무엇보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은 자신이 지지하던 대통령의 몰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행동과 표현은 가슴히 먹먹하게 다가왔다.
아침 일찍 중앙지검 청사 앞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차량 앞에 서서 ‘탄핵기각’을 목놓아 외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일부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경직된 표정으로 현 현 시국을 온 몸으로 비판했다.
각 보수단체 회원들은 차오르는 분노를 못참겠다며 강하게 분출했다. 울먹거리며 외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거친 숨소리로 가슴을 두드리는 사람, 이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집회장은 상당히 격양된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 속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나는 상황이 연출됐다.
스스로를 ‘애국시민’이라고 소개한 탄기국 소속의 한 여성(65)은 “삼성동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고 곧바로 서초동으로 왔다”며 “박 전 대통령이 차를 올라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흐느끼듯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일, 검찰에 출두한 일 모두 슬프고 속상한 일이다”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이렇게 끌어내려야만 했는지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생각하자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오전 9시35분 서초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오후 11시40분까지 14시간에 이르는 조사를 받았다. 7시간에 이르는 피의자 신문조서 검토까지 총 조사시간은 21시간 30분 가량 이어졌다. 이는 역대 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다. [사진=박미나 기자, 공동취재단] ⓒ스카이데일리
그는 특히 언론, 검찰, 헌법재판소 등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고 관여한 이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 여성은 “언론은 왜 촛불집회만 집중 조명하고, 이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표현하느냐”며 “우리 역시 생각 없이 나온 게 아니라 나라 걱정에 목숨을 내놓고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떻게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 판결이 나올 수 있느냐”며 “이것은 계획된 일이고 분명 문제 있는 일이다”고 성토했다.
이 여성은 현 시국에 대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도중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수긍하면서도 “대통령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고 한 최 씨, 그것을 빌미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불순 세력이 진짜 큰 문제다”고 울부짖었다.
탄기국의 또 다른 회원인 김모 씨는 자신을 40년간 교직에 몸담아온 교육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의 현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유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상황’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급기야 검찰에까지 출두한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개탄스럽다”며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이유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창 커가는 아이들이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어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겠는가”라며 “나부터도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전직 교육자로서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세대 간의 골만 깊어지고, 급기야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사태만 초래할 것이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모 씨는 “태극기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태극기를 든 노인’이라는 이유로 젊은 층들이 수군거리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며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다”며 “어찌됐던 앞전 세대를 살아오며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목숨걸고 먹고 살 걱정 없는 나라로 만든 주역들인데 젊은 세대에게 이런 대접을 받으니 과연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싶다”고 토로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도중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 여성이 “우리나라 국민이면서 대통령이 탄핵된 것이 그렇게 좋으냐”며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왜 내가 생업인 가게 문을 닫고 검찰청까지 뛰쳐 왔겠느냐”며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헌재와 국가의 혼란을 자초하면서까지 말도 안되는 수사를 강행하는 검찰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고 성토했다.
분노의 목소리 곳곳에서 울려…서울광장은 지금도 5개월 째 탄핵규탄 텐트
▲ 서울광장에는 탄핵을 규탄하는 보수단체 텐트 40여개가 설치돼 있다. 한 단체 관계자는 “우린 국가의 희망을 위해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로 집회 열기가 뜨거운 중앙지검 청사 앞에는 보수단체 중 한곳인 ‘대통령복권국민저항본부’도 동참했다. 회원들은 모두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사기탄핵’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앞서 탄기국 회원들에 비해서는 침착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비장함은 그에 못지 않았다.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한성주 대표는 “대통령복권국민저항본부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근거해 저항운동을 펼치는 단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구속절차 수순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담한 심정이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눈앞에 놓인 시국에 대해 “사실상 언론, 국회, 검찰, 종북간첩단 등이 나라를 장악해 대통령을 탄핵시키기에 이르렀다”며 “이대로 가면 5월에 치러질 대선도 종북간첩단 등이 관여해 부정선거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다”고 내다봤다.
연일 탄핵규탄 시위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보수단체들이 설치한 텐트들이 약 40여개 가량 시야에 들어왔다. 텐트 주변에는 국가보훈단체 관계자들이 서 있었다. 한 단체 관계자는 “우리는 오늘(21일) 검찰조사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린 국가의 희망을 위해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검찰출두 등 현 시국에 대해서는 “탄핵 조건에 충족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탄핵이 된 것은 법치주의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확실치 않은 사실을 갖고 모든 죄를 (박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보훈단체 관계자들은 언론, 검찰 등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갈등이 깊어지게 된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했다. 단체 관계자는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동시에 열렸을 때 거의 전 방송매체에서 촛불집회만 부각시켰다”며 “우리의 생각이 무엇이고,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보수단체들은 언론, 국회, 검찰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회원들은 ‘사기탄핵’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며 수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서울광장에는 유력 언론 매체들을 비판하는 문구와 글이 담긴 현수막·대자보 등도 걸렸다. ⓒ스카이데일리
실제로 서울 광장에는 유력 언론 매체들을 비판하는 문구와 글이 담긴 현수막·대자보 등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보수신문의 대표격인 조선일보 역시 그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 특히 주목됐다. 한 대자보의 제목은 ‘조선일보가 국가를 죽였다’였다.
서울 광장에 모인 보수단체 역시 특정한 정당이나 단체의 편에 서서 그들을 비호하는 성격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국가’라는 하나의 절대적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 현수막에 적힌 ‘새누리당! 뼈를 깎는 개혁하고 진충보국 신인 영입하라’는 내용이 이를 방증했다.
한 보수단체의 60대 남성 회원은 “지금의 50~60대가 지금의 나라를 일궜다”며 “자식을 키워온 마음으로 현재 보수와 진보로 나뉜 우리나라를 똘똘 뭉치게 하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젊은 세대들은 지금 당장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좀 더 넓게, 멀리 보는 시각을 가진 기성세대의 뜻을 한 번쯤을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국내 여러 보수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세력에 맞서 애국집회를 열고 있다. 특히 헌재에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지난 10일 이후에는 탄핵규탄 집회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헌법수호애국민연합’은 지난해 11월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자유대한민국지키기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달 16일 대구 중구 덕산동 동아백화점에서 ‘헌법수호와 자유대한민국 지키기 범국민대회’를 진행했다.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위헌탄핵 태극기집회’를 열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어버이연합)’은 지난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당시 심인섭 어버이연합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이 ‘진실을 밝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고 확신했다.
심 회장은 이어 “헌법재판소가 전원 만장일치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박 전 대통령을 쫓아냈다”며 “9인체제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이번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번 탄핵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단순히 박 대통령 개인의 누명을 벗기는 차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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