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에요. 비록 기구와 기계에 의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관객들이 제 노래를 듣고 환호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이제는 저보다 더 힘든 이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노래할 거에요”
가수 김혁건(36) 씨의 이름 석 자는 대중들에게 생소하다. 그러나 그의 노래만큼은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곡이다. 20·30대 뭇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인 록밴드 더크로스의 ‘Don't Cry’가 바로 그의 노래다.
더크로스 리드보컬 출신으로 홍대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활동해 온 김 씨는 현재 몸 전체가 마비된 상태다. 지난 2012년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불법 유턴하던 트럭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는 노래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4옥타브 넘나들던 록 발라드계 전설…장애인 현실 받아들이기까지 ‘인고의 세월’
그는 남들보다 쉽게 데뷔한 케이스다. 2001년 친구와 함께 출전한 Mnet뮤직페스티벌 락 솔로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뒤 곧바로 연예기획사에 캐스팅 돼 록밴드 더크로스의 리드보컬로 데뷔하게 됐다. 더크로스의 1집앨범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팬카페 회원이 금새 5만명을 넘어서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 만큼 알아보시는 분들이 늘기 시작했었어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신기하고 즐거울 뿐이죠. 하지만 그때는 늘 더 잘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어요. 잘하는 누군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거죠”
그는 노래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성악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앞서 그가 히트 친 Don't Cry 역시 3옥타브를 넘는 가창력이 요구됐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무리 없이 소화했던 그가 성악까지 배우게 되자 4옥타브를 넘나드는 로커로, 또 보컬트레이너로도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음은 커녕 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버거운 신세가 됐다.
“순식간이었어요. 사고가 났고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그것조차 내 맘대로 할 수 없었죠. 가족들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거에요. 제가 이렇게 되니 진짜 내 편이 가려지더군요. 노래를 가르치던 제자들과 친구들이 서서히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죠”
가족들과 일부 지인들은 끝까지 곁에 남아 그를 응원했다. 덕분에 그는 지옥 같은 재활치료를 견딜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쉬이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욕창이 생겨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받아야 했으며 죽음의 문턱을 오가기도 했다. 그 때 그는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의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병원침대에 누워있으면 치료사가 와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팔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해요. 가만히 있으면 석회질이 쌓여 굳기 때문이죠. 기적은 정말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어요. 저희 부모님께서 제 치료를 위해 전국 각지로 백방으로 뛰어다니셨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죠”
가족들의 깊은 은혜에 힘입어 다시 우뚝…‘복부압력기’ 힘 빌려 노래
“부모님은 좋다는 치료방법, 약재 등은 모두 공수해 저에게 먹이고 시도하셨죠. 매일같이 제 대소변을 치우시면서 싫은 내색도 안 하셨요. 오히려 ‘우리 아들은 변 냄새가 향기롭다’, ‘대소변을 보는 게 건강하다는 증거다’ 등으로 저를 위로해주셨죠. 부모님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그에게 지친 재활생활을 달래주는 것 역시 노래였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연습하다 배를 누르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노래를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개발에 돌입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그만을 위한 노래보조기구가 탄생하게 됐다.
“아버지가 뛰어난 기술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성냥·이쑤시개 따위로 본인이 구상한 기구의 모형을 만들었고 이거 하나 들고 전국의 철공소를 돌아다니셨어요. 하지만 다들 제작의뢰를 거절했다고 해요. 그러다 한 분이 해보겠다고 했고 이를 계기로 노래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구를 그는 ‘복부압력기’라고 불렀다. 지금은 수차례의 개량과정을 거쳐 김 씨 혼자서 조절이 가능하지만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무게만 15kg이었으며 소리도 커 불편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복부압력기를 하나의 악기라고 표현했다.
“손가락으로 강약조절이 가능할 정도에요. 이를 통해 음높이와 음세기 등을 조절할 수 있는거에요. 악기나 마찬가지죠 제겐. 아버지의 노력과 이를 제작해준 마음씨 따듯한 철공소 그리고 서울대 로봇융합연구센터 방영봉 센터장 등의 도움 끝에 다시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어요”
복부압력기를 통해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 KBS2TV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됐다. 고난을 딛고 노래에 대한 열정을 저버리지 않은 그의 삶이 비슷한 사연의 많은 이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방송 후 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많은 분들이 피드백을 주세요. 장애를 가지신 분 그렇지 않으신 분들 모두가 저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더군요. 감사하다는 말을 이렇게도 들어보게 됐어요. 제가 힘들 때 누군가의 삶과 글이 희망이 됐듯 내 노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게 됐어요”
‘희망전도사’로 제2의 삶…“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끝까지 노래할래요”
복부압력기는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성치 않은 몸에 인위적인 압박을 줘 소리를 내고 이를 참고 견디기 위해 많은 힘을 소진해야 하는 만큼 김 씨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수많은 고통이 수반된다고 언급했다.
“노래할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껴요. 배에 계속 압력을 가하다 보면 강직이 생겨 몸이 부르르 떨리기도 하죠. 때론 소변에 피도 섞여 나오기도 해요. 많이 배를 누르면 위험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노래를 부르는 것 역시 불가능해요”
“하지만 노래만큼은 포기할 순 없어요. 다소 고통스럽고 또 위험하기도 하지만 감수하며 할 겁니다. 건강하게 더 오래 좋은 노래를 하는 것이 목표에요. 그리고 제 모습을 통해 저뿐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요”
그는 공연뿐만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사로서 활동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 3년 간 현대차그룹 신입사원 연수 시 ‘도전’ 정신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최중증경추장애인 커뮤니티 ‘경추야놀자’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게 고민을 털어놓는 많은 분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못하겠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도전하기 전에 할 수 없다고 판단하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삶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드리고 싶어요”
그는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에세이집 ‘넌 할 수 있어’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희노애락 인생사가 담겨있는 이 책의 수익금은 장애 아동을 위해 쓰여 진다. 조만간 오디오북으로도 출시해 책을 읽기 어려운 장애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저도 끝까지 포기하지 거에요. 지금 바로 도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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