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작품을 제작하더라도 무조건 제대로 만든다는 생각을 해야 작품이 나와요. 가벼운 마음으로는 절대 명작을 만들 수 없죠. 이것이 평생 나전칠기 제작에만 몰두해온 저의 소신이에요. 그동안 묵묵히 지켜온 저만의 소신으로 앞으로 나전칠기의 길을 걸어가며 개척할 계획이에요”
천봉 김정열(63) 명장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나전칠기장이다. 1968년 초등학교 졸업 후 나전칠기에 입문해 올해로 49년째 한 길만 걷고 있다. 그동안 공예 간편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몰두, 명장을 거쳐 지난 1998년 무형문화재로 등극했다.
과거 왕실과 귀족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나전칠기는 칠공예의 장식기법 중 하나다.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의 표면 위에 광채 나는 야광패(夜光貝)나 전복조개 등의 껍질을 여러 가지 문양으로 박아 넣어 장식한 칠기를 말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이 만들어낸 전복, 소라 등의 진주층을 다듬어낸 자개는 장인의 예술적 혼과 만나면 그 빛깔이 천년이 넘도록 유지된다고 한다. 나전칠기 한 작품은 나무에 옻을 칠하는 것부터 최종 마감까지 적어도 수십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품 반열에 오른다.
“요즘엔 일본에서 넘어온 카슈칠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죠. 접착력이 좋은 카슈열매 추출액을 이용해 장식을 접착하는 기법인데, 여기엔 화학성분이 있어요. 비록 겉으로 보기엔 전통방식과 차이가 미비할지 모르지만 안전성 측면에서는 옻칠과 확연히 다르죠. 저는 앞으로도 절대 카슈칠 기법은 절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김정열 명장의 굳건한 소신은 나전칠기 명장에 이어 무형문화재 반열에 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그는 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경기도 양주시 장흥관광단지 내에서 천봉 나전칠기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 1층에는 김정열 명장의 나전칠기 작품 관람이 가능한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2층은 나전칠기 제작과정 공개 및 교육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나전칠기 장인으로부터 기술 전수…어머니 암 투병 뒷바라지로 하청신세 ‘인고의 세월’
김정열 명장의 어릴 적 꿈은 판사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재학 당시, 공교육의 ‘부정비리’를 목격하고는 공부에 뜻을 접었다. 그는 14세가 되던 해 친척인 나전칠기 장인 안창덕 옹을 통해 나전칠기에 입문하게 됐다. 남다른 소질을 보인 그는 입문 3년 만인 17세에 공방의 책임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려던 찰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암 투병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김 명장은 어머니 뒷바라지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공방 운영은 점차 어려워졌다. 많은 빚을 지게 되면서 공방을 접고 나전칠기 하청업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은 무려 2~3년이나 지속됐다.
“그 때는 다시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내 마음을 다잡았죠. 그 때 이곳 양주로 오게 됐어요. 실력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1992년 제22회 전국공예품 대전에 참가했죠. 운 좋게도 대상을 탔어요.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해요. 정말 기뻤죠”
김정열 멸장은 1993년 제 28회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 1996년에는 대통령 표창, 2001년 직업능력개발 촉진대회 종합 1위, 2011년 대한민국 명장 작품전 1위 등 각종 공모전을 휩쓸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력에 남을만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91년엔 청와대 비치용 주칠 제작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고, 1999년엔 한미문화사절단에 참여해 뉴욕 등 6개 도시에서 순회전시를 펼쳤다. 같은 해 9월 제1회 청주국제 공예 비엔날래 초대 작가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그는 이탈리아 대사관 출품 참여, 일본 오사카 ‘비즈니스파크’ 작품 전시·시연, 한중수교 10주년 기념전 작품 전시·시연, 정부조달 문화상품협회 부회장 역임, 경기 북부 명장회 회장 역임 등의 이력도 지녔다.
“한 분야 수십년 몸담은 명장들 처우 개선돼야 전통예술에 대한 국민인식 바뀌죠”
김정열 명장이 오랜 기간 나전칠기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기술을 전수받아 문화를 계승시키려는 제자들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장녀 김영효씨는 김 명장의 전수 조교로서 나전칠기 장인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저랑 비슷한 연배까지 다양한 제자들이 있었죠. 공모전 등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거나 나전칠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제자들을 만날 때면 너무 고맙죠. 그 어떤 보람과도 맞바꿀 수 없어요. 이런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나전칠기에 몰두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하죠”
김정열 명장은 앞으로 나전칠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예품을 예술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술작품은 수천만원을 주고서라도 구입하려 하지만 나전칠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대통령이 예술 장인을 만나려 해도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아놔야 한다더군요. 사실 그 정도의 대우는 바라지도 않아요.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의 예술 장인에 대한 처우 개선만 이뤄진다면 만족하죠. 그래야 공예품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김정열 명장은 앞으로 훌륭한 제자들을 꾸준히 양성해 나전칠기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나전칠기를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방안도 마련 할 계획이다. 공공건물을 나전칠기로 꾸미는 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나전칠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공예품도 장인의 숨결과 혼이 담겨있는 예술작품이에요. 나전칠기는 우리 조상의 오랜 전통과 얼, 영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죠. 앞으로 나전칠기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간절히 원하죠”
[이지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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