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더라고요. 주어진 인생 안에서 얼마나 가치 있게 행복을 찾을 수 있냐는 거죠. 과거 테니스 선수였을 때도, 현재 성악을 하고 있으면서도 저는 제 가슴은 항상 뛰었죠. 이제는 제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하고자 하는 사명감도 생겼어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51) 씨는 자신의 굴곡진 삶을 극복하고 현재는 성악가 및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에 탓에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공사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던 도중 와이어가 끊어져 1톤짜리 콘크리트 더미에 몸 일부가 깔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척수신경이 끊어져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반신불수로 살아야 했지만 특유의 승부욕과 집념으로 결국 위기를 극복해냈다. 현재 그는 성악가·전문강사 등으로 맹활약 중이다. 특히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내용의 강연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에게는 어느새 ‘희망전도사’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한순간 사고로 잃은 두 다리…갓 태어난 아들 보며 재기의 의지 다져
사고는 황 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고 직후 아내가 임신 5주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감은 더욱 커졌다. 1년 6개월 동안 치료 했지만 이렇다 할 차도는 없었다. 결국 장애를 안은 채 퇴원했고, 약 6개월 간 은둔생활을 했다. 지금도 그는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자살기도도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하반신 마비 때문에 죽음조차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더라고요. 차에 뛰어들고 싶어도,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밤마다 술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갓 태어난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데 아차 싶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죠”
이후 그는 장애를 받아들이고 사회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힘쓰기 시작했다. 양궁·탁구·수영·테니스 등 재활 목적으로 하던 여러 운동 종목 중 특히 테니스에 매력을 느꼈다. 장애인으로의 삶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코트에 선 순간만큼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테니스에 몰입했다.
“테니스를 하다 보니 승부욕이 생겨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5년 동안 일본을 오가며 국제대회도 나갔죠. 그때 만난 장애인 선수들을 보면서 ‘저들은 불편한데도 어떻게 저렇게 해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육체적인 재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재활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그렇게 테니스에 전념한 끝에 국가대표로 선발됐죠. 당시 만해도 운동선수로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믿었죠”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1998년 방콕아·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렇게 각종 국제대회를 참가하면서 세계 랭킹 36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가다 넘어져 손을 다치면서 더 이상 테니스를 할 수 없게 됐다.
“왜 자꾸 저만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나 절망했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허망했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아무 말 없이 지지해줬어요. 장애인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들과 남편을 묵묵하게 믿어주는 아내 덕분에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두 번의 위기에도 우뚝…절망 속에서 희망 전하겠다는 ‘사명감’까지 생겨
황영택 씨가 반신불수의 몸을 이끌고 두 번째로 도전한 분야는 바로 음악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으로 그는 36살 늦깎이 수험생으로 수능을 치르고 이듬해 성결대학교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를 갔더니 동기들이 저더러 다 아저씨라고 하더라고요. 17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장애인이라 횡격막에 힘이 없고 젊은 친구들과는 성량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나서 배에 벨트를 묶고 성악 공부를 했어요.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 친구들과의 차이를 경험하면서 많이 느꼈죠”
그는 지금도 발성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주1회 이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장애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꾸미는 재능기부 형식의 희망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병원이든 기업체든 어디든지 찾아가 콘서트를 연다.
하반신 마비와 손바닥 뼈 골절 등 두 번의 위기를 맞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강연이다. 우연한 기회에 강단에 서게 됐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나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결심했던 학생이 제 강연을 듣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는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어요. 불편하고 미숙한 장애인인 제가 절망 속에 빠진 누군가에게 새 삶을 줬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죠. 저는 스스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이었다면 제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사실 누구나 힘들잖아요. 사는 건 다 같다고 생각해요. 그저 개개인이 처한 상황만 다를 뿐 이죠”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는 사실 남모를 고통을 떠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로 인해 여러 가지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수시로 걸리는 방광염으로 체온이 39도까지 오르는 등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 항상 애쓰고 있다. 황 씨는 이제 다시 위기가 닥쳐도 고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황 씨는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 공연·예술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으로 일관한 그는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장애를 자신의 핑계로도 삼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밀려오는 강연 요청에 그는 직접 운전해 찾아가고 있다. 그는 지금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피하면 피하는 만큼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신체적인 결함을 안고 있지만 저로 인해 누군가는 희망을 얻어요. 그들로 인해 저 역시 가슴 뛰도록 행복을 느끼죠. 이런 게 바로 더불어 사는 게 아닐까요. 장애가 잘못이 아니잖아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장애인과의 간격을 좁히는 일에 일조하고 싶어요”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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