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여성들을 위한 도서관이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천 부평에 소재한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이하·랄라)’다.
지난 2003년부터 ‘신나는 어린이 도서관’으로 운영돼 온 이곳은 ‘함께 떠들고 배우고 탐색하고 시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공간’을 모토로 지난 10일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다. 2012년 인근에 구립 삼산도서관이 설립돼 이용객이 줄자 인천여성회 부평지부는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도서관을 목표로 ‘랄라’를 추진했다.
‘아이의 엄마’가 아닌 ‘여성’의 방문을 이끌겠다는 ‘랄라’가 추구하는 여성주의는 기존의 ‘여성전용’ 공간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여성전용’의 확대로 성대결조장·역차별·소수자배제 등 각종 오명에 시달려 온 페미니즘의 본질과 개선책 등을 논의하고 이를 학습하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게 취지로 비춰진다.
여성을 위한 배려의 공간…“고맙다는 여성들의 말 한마디 희망됐다”
‘랄라’ 측은 여성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강조했다. 여성들을 위하고 배려하는 공간이지 결단코 여성들만의 출입이 가능한 ‘여성전용 도서관’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배려의 흔적은 이용시간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출이 가능한 일반 도서관들과 달리 랄라는 △화·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목·금·토요일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 각각 문을 연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이다.
류지현 랄라 관장은 “어린이도서관이 운용될 당시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방문하는 시간대에 맞춰 도서관을 운영했다면 현재는 오롯이 여성들이 방문하기 편한 시간대를 책정했다”며 “특히 직장인 여성들을 위해 개관 시간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은 여느 도서관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규모대비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여타 도서관들보다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국내 절판된 페미니즘 도서를 기증받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거나 관련 저술활동을 펼친 작가들과의 만남의 장이 열리며 여성주의 영화가 상영되기도 한다. ‘면생리대 만들기’와 같이 여성들을 위한 각종 강좌와 전시 등이 기획·운용 된다. 도서관 내 일부 공간에는 플리마켓(벼룩시장)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가게를 운용하는 등 사업이 아닌 손재주가 있는 개인들이 직접 제작한 파우치·가방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류지현 관장은 “경력단절여성의 사회재접촉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고 플리마켓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어린이도서관에서 여성주의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켜 재개관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찾아올까 싶기도 했다”면서 “작가와의 만남의 장이 마련됐을 때는 부평주민들과 10대 여중생들도 참석하는 등 많은 이들이 찾아와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는 내방객들의 말 한마디가 랄라 운영에 큰 희망이 됐다”고 덧붙였다.
랄라를 찾은 시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었다. 신주현(25·여) 씨는 “최근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도서관의 콘셉트가 그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며 “규모 대비 페미니즘 도서가 많고 진행되는 프로그램 또한 취지와 일관돼 자주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평등이 진정한 페미니즘…부정적 시선 벗어 던져야”
랄라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은 여권신장을 비롯해 노인·아동·장애인·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평등에 관해 논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그동안 페미니즘이 여권신장 측면만 부각된 탓에 부정적인 시선을 받아왔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부작용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여성전용’이다. 여성전용 주차장, 여성전용 지하철 등은 역차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994년 개관한 제천여성도서관은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취지로 김학임 여사가 11억원 상당의 땅을 기부해 설립됐으나 남성출입이 금지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이곳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조치로 도서관 1층 일부에 한해 남성출입을 가능하게 했다. 제천의 사례를 들며 전문가들은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랄라가 공공시설인 만큼 외부시선을 이해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기존 지역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페미니즘에 관해 아직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 공공시설 이름을 여성주의로 명명한다면 일반 지역주민들의 오해·반발 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전면으로 여성을 위한 공간임을 부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배제시키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이 아동·노인·장애인·소수자 등 모두의 문제에 주목하는 관점이라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초반에는 다양한 성격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차츰 여성 문제 등으로 특화해나간다면 최초 여성주의 도서관으로서 긍정적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슬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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