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월 김동수(48·자양동) 씨는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며 부산에 가던 중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후 8시경 앞서 가던 차를 추월하기 위에 사이드미러 등 후방 거울로 뒤를 살핀 후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었다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승용차와 부딪칠 뻔 했다. 다행히 사고는 면했지만 차에 아내와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은 해당 차량은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지 않은 차량이었다.
#2. 지난해 12월 김미화(25·성수동) 씨는 늦은 저녁 비보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그만 반대편 직진하던 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전까지 마주오던 차량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해당 차량이 전조등을 켜지 않고 주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험사 조사 결과, 사고 책임의 30%는 김 씨에게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상대 차량이 전조등만 켰어도 피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김 씨는 억울한 감정을 느꼈다.
#3. 지난해 5월 광주지방경찰청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야기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조폭 11명, 법인택시 운전사 7명 등 60명을 사기혐의 검거했다. 이들이 용이한 범행을 위해 사용한 방법은 전조등을 끈 채로 상대차량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최근 야간에 전조등·후미등을 켜지 않고 주행하는 차량, 이른바 ‘스텔스차’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하지만 스텔스차에 대한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스텔스차에 대한 과실 비율이 비교적 낮게 책정되는 경우도 빈번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텔스차’는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은폐 기술을 의미하는 ‘스텔스(stealth)’와 ‘자동차’를 합친 신조어다.
도로 위의 시한폭탄 스텔스차, 솜방망이 처벌 ‘심각’
교통사고 전문 로펌 관계자에 따르면 야간 주행 중 차로를 변경하다가 전조등을 켜지 않은 차와 사고가 나는 경우, 주간 교통사고 과실비율 책정과 큰 차이 없다. 전조등 미점등 차량에 대해서 특별히 과실을 묻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현행법상 야간에 전조등을 켜지 않고 운행하다 경찰에 적발되면 △승합자동차·승용자동차 2만원 △이륜자동차·자전거 1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된다. 벌점은 부과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 제50조(특정 운전자의 준수사항) 좌석안전띠 미착용에 대한 범칙금 3만원 보다 낮은 금액이다. 심지어 경범죄인 노방방뇨(5만원) 보다도 처벌 수위가 낮다.
야간에 전조등을 켠 정상 주행 차량과 사고가 났더라도 스텔스차에 대한 추가 과실비율을 10% 내외다.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오는 차량을 보지 못해 발생한 사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실비율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에서 만난 박영식(35·남)씨는 “야간에 스텔스 차와 사고가 났을 경우 과실 비율이 터무니 없이 책정되는 경우를 본 적 있다”며 “도대체 보이지 않는 차를 어떻게 피하라는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가 지고 어두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전조등을 켜지 않고 운행하는 차량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신림동에서 만난 택시기사 오세택(53·남)씨는 “밤에 전조등 안 켠 차가 생각보다 많다”며 “운전할 때 전조등 안 켠 차를 보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스텔스차의 범칙금도 2만원 밖에 안 된다고 들었는데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야간에 차량 식별 어려워…사고 발생 시 부상정도나 사망위험성 특히 높아
스텔스 차량 사고와 관련, 보험업계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일방적으로 스텔스 차량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스텔스 차에 대해 과실을 추가로 5~10%정도만 더 부과한다”며 “야간에 전조등을 켜지 않으면 ‘도로교통법 제37조 등화관제의무’에 의거해 과실을 책정하지만 이 역시 무조건 과실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DB손해보험(전 동부화재) 관계자는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고 사고의 전후 사정과 도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실 비율을 따질 때는 신중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량사고는 요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과실 비율을 산정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텔스차가 위험한 결정적 이유는 야간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뒤늦게 발견하도라도 급제동을 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스텔스차는 다른 차량 운전자가 위치 파악이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동일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부상정도나 사망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이어 “스텔스차 위험성에 대해 직접 실험을 했었는데 차량을 인지하는 시간과 브레이크를 밟기까지의 걸리는 시간과 비슷해 사실상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허억 가천대학교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스텔스차 저승길로 안내하는 ‘도로위의 암살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 위험을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도 스텔스 차에 부과하는 범칙금은 고작 2만원에 불과하다”며 “처벌 수위가 경미하다 보니 대부분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스텔스차에 대한 범칙금 등 처벌 수위를 지금보다 강화해야한다”며 “동시에 캠페인 등과 같은 개도활동도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스텔스차의 위험성은 매우 높으며 이러한 차량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갈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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