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총수 부재 현상의 장기화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대규모 인수합병 정체 현상이 꼽힌다. 애플·구글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신기술·신사업 확보를 위해 무서운 기세로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만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를 꼽고 있다.국내 경영 풍토 상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너경영인의 경우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들에 비해 사업 전반에 걸친 책임과 역할이 더욱 막중하기 때문이다.
구글·애플 등 M&A 통한 신기술 확보 노력 박차, 글로벌 대세로 자리매김 한 ‘기업쇼핑’
최근 IT기업들은 AI(인공지능)·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 신기술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도 이 같은 업계 트렌드는 여실히 드러났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기술 혹은 타사와의 협력을 통해 신기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제품들이 공개됐다.
기술개발 시간을 압축하기 위해 이미 신기술을 확보한 벤처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것도 최근 트렌드다. 그 중에서도 미국계 글로벌 IT기업 ‘구글’은 가장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구글은 지난해 2014년부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이하·IoT), VR 등 신기술 관련 기업을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국을 벌인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2014년)을 비롯해 전도유망한 기업들이 구글에 인수됐다.
지난 4년간 구글에 인수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2014년 딥마인드, 퀘스트비주얼, 젯팩, 다크블루랩스, 비전팩토리, 네스트, 타이탄에어로스페이스 △ 2015년 몹보이, 쓰라이브오디오, 스킬맨앤해켓, 매직리프, 타임풀, 플라이랩스 △2016년 파이, 아피지, 아이플루언스, API.AI △2017년 캐글, 할리랩스, 아울케미랩스 등이었다.
애플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증강현실·인공지능 등 신기술 분야와 연관된 기업들을 인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4년 간 인수한 기업들 중 △2014년 노바리스, 북램프 △2015년 메타이오, 보컬큐, 퍼셉티오, 페이스시프트 △2016년 투리, 플라이바이미디어, 이모션트, 튜플점프, 에몰리언트 △2017년 SMI, 래티스데이터, 버바나, 리게인드, Init.ai 등이 대표적이다.
선단장(이재용) 잃은 거대선단 삼성그룹…선단 내 선장·선원 대부분 “두렵고 난감”
구글의 경우 신기술 외 다른 분야 기업 인수합병까지 합하면 거의 한 달에 두 번꼴 수준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졌을 정도로 M&A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삼성의 인수합병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난해의 경우 단 두건의 M&A에 그친 결과를 보였다.
초라한 삼성전자의 M&A 실적을 두고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배경으로는 총수부재다. 앞서 삼성전자가 앞서 △2015년 심프레스, 루프페이, 예스코일렉트로닉스 △2016년 조이언트, 애드기어, 데이코, 비브랩스, 뉴넷캐나다, 하만 등을 인수했던 전례는 이 같은 지적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들 M&A는 이 부회장이 한창 경영을 진두지휘했던 시절에 이뤄졌다.
기업을 인수했던 전례에 비춰봤을 때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한 셈인데 많게는 수 조원이 투입되는 M&A 특성 상 최고결정권자의 승인 없이 전문경영인들이 독단적으로 추진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간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은 심심찮게 경영공백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총수 부재로 사업에 영향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든지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애로사항이 많이 있다”며 “무섭고도 두렵다”고 답한 바 있다.
윤 부회장은 삼성을 두고 ‘여러 척이 공동 작업하는 어선의 선단’에 비유했다. 그는 “선단에서 한 배의 선장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단장이 부재중이라 정보기술(IT) 업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그는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고 사업 재편과 인수합병을 하고 있는데 일개 배의 선장이 할 수 있겠느냐”며 “내가 맡고 있는 사업의 일부분이라면 괜찮은데 각 부문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총수의)부재가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감에 여러 가지 전략을 짜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지고 리더들을 만나고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나도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장(사장) 역시 최근 열린 CES 2018에서 비슷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 사장은 “총수 부재 상황에 대해서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말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기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 주춤해졌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김 사장은 “커다란 M&A를 하려면 회사 전체의 컨센서스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다”고 답했다. 현재 이 부회장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사실상 발이 묶여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대표)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외치는 이들은 인적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잘 모르고 있다”며 “글로벌 IT 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인 이 부회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신뢰를 쌓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미래먹거리와 M&A에 대한 구상이 나오는 것인데 장기간 이러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인적 네트워크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최근 삼성이 총수가 없으니 주가가 오르고 실적이 좋다는 것은 피상적인 것만 본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R&D 기반 구축 및 반도체 시설에 투자하는 등의 의사결정을 잘했기 때문에 현재의 삼성전자가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며 “현재 제대로 된 결정이 이뤄지지 못하면 미래의 삼성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한국경제 역시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은주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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