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을 잠재우기 위해 칼을 빼들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잇따른 규제책으로 사업성이 적거나 시행 여부가 불투명한 단지들은 일찌감치 재건축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일대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들이 대표적이다. 지어진지 20년 남짓한 다섯 개 아파트 단지들은 최근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단지 통합형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최근 이곳 단지의 시세는 지난해 대비 최고 3억원 이상 올랐다.
‘서울의 중심’이라는 입지적인 요건과 더불어 리모델링 후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다만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인 만큼 아직까지 조합원들 사이에서 약간의 이견차가 발생해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점은 향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강 옆 부촌에 국내 최초 ‘단지 통합형’ 리모델링 추진에 이목 집중
부동사업계 등에 따르면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15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들을 대상으로 한다. 재건축연한 30년의 절반 수준이다. 해당 사업은 기존 아파트의 골격을 유지한 채 내·외부를 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신규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
각종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재건축보다 절차가 간소해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세대수 증가 범위는 15% 이내로 14층 이하는 2개층, 15층 이상은 3개층 증축도 가능하다. 리모델링은 이미 최대 용적률이 적용돼 재건축 사업성이 적은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주목받아왔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재건축 사업 규제 강화 움직임 덕분에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늘리는 게 골자다. 재건축연한을 모두 채웠더라도 안전에 큰 이상이 없다면 사업을 시행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투자 목적의 재건축 아파트 수요를 잡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방안 발표 이후 사업을 시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일부 노후 아파트 단지들은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카드를 고려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통부촌으로 알려진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 인근 △한가람아파트(2036세대) △강촌아파트(1001세대) △이촌코오롱아파트(834세대) △한강대우아파트(834세대) △이촌우성아파트(243세대) 등 총 4948세대는 현재 단지 통합형 리모델링 추진을 논의 중이다.
이곳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노후도가 심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가람아파트에 거주 중인 심희진(37·여) 씨는 “지어진 지 오래되다 보니 층간소음이 심해 주민들 간에 싸움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이촌역 주변으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선 지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인 이지수(33·여) 씨는 “5개 단지가 동시에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있지 않겠냐”며 “지금은 단지가 모여 있어도 각기 다른 아파트 단지라는 느낌이 있는데 통합 리모델링을 진행하게 되면 하나의 마을공동체처럼 주민 커뮤니티 시설도 마련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이들 단지 주민 약 100여명이 모여 통합리모델링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설명회도 주기적으로 실시 중이다.
통합 리모델링 추진 소식에 실거래가 1년 새 평균 3억원 껑충, 나왔던 매물도 자취 감춰
통합 리모델링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 단지들은 최근 시세가 껑충 뛰었다. 뛰어난 입지적 장점과 더불어 생활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됐다. 인근 A부동산 관계자는 “용산역 역세권 개발 사업이나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등 호재도 있는 상황에서 통합 리모델링 소식이 들리자 괜찮은 매물들은 벌써 동이 났다”며 “이제 대부분의 매물이 10억원 이상에 거래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인근 J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한가람아파트 전용 59.88㎡ 평형대의 현재 시세는 10억5000만원에 달한다. 전년(7억5000만원) 대비 3억원 가량 오른 시세다. 올 1월만 해도 해당 규모 호실은 9억원에 거래됐었다. 불과 3개월 새 1억원 이상 시세가 오른 셈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한강대우아파트 전용 59.98㎡ 평형대 호실은 1년 전(7억5000만원)보다 3억1000만원 오른 10억6000만원을 호가한다. 이촌코오롱 전용 59.82㎡ 평형대 호실의 현재 매매가는 9억500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6억7000만원에 비해 2억8000만원 오른 수준이다. 우성아파트 전용 58.2㎡ 평형대 호실은 전년 대비 2억7000만원 오른 8억9000만원, 강촌아파트 전용 59.12㎡ 평형대 호실은 2억6500만원 오른 9억5000만원 등이었다.
인근 Y부동산 관계자는 “재건축은 10년 뒤 제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지금부터 시작할 경우 10년 뒤 수익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이 실수요층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간 것 같다”며 “리모델링 완료 후에는 재건축을 마친 신축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돼 최근에는 내놨던 매물을 다시 거둬들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섣부른 수익성 장담은 금물, 통합 리모델링 첫 사례 변수 유념해야”
통합 리모델링의 첫 사례라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민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한가람아파트에서 5년째 거주 중인 고지혜(42·여·가명) 씨는 “재건축이 이뤄지면 새롭게 유입되는 주민들도 많으니까 향후 학군도 개선되고 집값도 크게 상승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데 리모델링은 그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아쉬움이 좀 있다”고 운을 뗐다.
고 씨는 “일단 사례가 없다보니 추가 분담금에 대한 부담이 작용할 수 있고 자녀 교육 때문에 세를 놓고 강남·대치 등으로 빠진 집주인들은 굳이 본인들이 살 것도 아닌데 리모델링이 필요할까 의문을 가지는 주민들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이제까지 통합 리모델링을 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섣불리 수익성을 장담하긴 어렵다”며 “기존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을 보면 재건축을 바라는 입주민들과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던 부분이 통상적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관건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가 나오면 향후 시장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지만 리모델링은 재건축처럼 대규모로 거주자들의 이동이나 유입이 새롭게 이뤄지는 사업이 아니다”며 “강남 대체지로서 입지조건은 좋지만 학군 등은 재건축 사업을 했을 때보다 변화가 덜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리모델링은 입주민 개개인의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며 “당장은 재건축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리모델링 시장이 확대될 수 있지만 이것이 재건축의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이어 “내 돈을 들여서 집을 수리·보수하는 것인데 기존 가격에 투자금액 만큼 더 받으려고 할 테니까 오히려 집값을 부추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