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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미운털 박힌 헝가리… 1조6000억 원 지원금 무산
"반부패 개혁 이행되지 않았다" vs "조건 갖췄다"
이민자·국가정체성 등 문제에 서유럽과 입장 상반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1-03 06:22:49
 
▲ 헝가리가 유럽연합(EU)의 10억4000만 유로(약 1조6000억 원) 지원금을 끝내 못받게 됐다. EU 집행위원회가 조건으로 내건 반부패 개혁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지만, 헝가리정부는 조건을 달성했음에도 정치적 이유에 의한 처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민자·국가정체성 문제 등에 기독교가치의 보수적 입장을 고수해 온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전쟁을 둘러싸고 줄곧 EU 주류와 상반된 입장을 보여 왔다. 연합뉴스 
 
헝가리가 유럽연합(EU)이 집행을 보류해 온 10억4000만 유로(약 1조6000억 원)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취약지역 지원 프로그램 지원금이었다. 1일(현지시간) dpa·AFP 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말까지 헝가리에 지원금 지급 조건으로 요구했던 반부패 개혁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22년부터 회원국 헝가리가 EU의 법치주의·민주주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묶어둔 채 이해상충 방지와 반부패 개혁을 요구했다. 
 
그간 헝가리가 일부 개혁 조처를 하면서 EU가 집행한 자금도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지원금이나 각종 보조금 등 총 190억 유로(29조1000억 원)가 남아 있다. 헝가리로선 꽤 뼈아픈 손실이다. 지난해 2·3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기술적인 경기침체에 빠졌으며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5%를 넘었다. 인구 약 960만에 시장경제 30여년 만에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에 도달한 개발도상국 헝가리에겐 이래저래 힘겨운 고비다.
 
헝가리 정부는 EU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고 주장한다. 부패상으로 치면 우크라이나를 능가할 곳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보커 야노시 헝가리 EU 담당 장관이 지난달 중순 페이스북에 EU가 헝가리와 헝가리 국민의 돈을 정치적인 이유로 묶어두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 글을 올렸다. EU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이며 러시아와 우호적이라는 게 사실상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내 일부 네오콘 세력이 한목소리로 도널드 트럼프를 맹비난할 때도 헝가리는 함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미국 방문 때 현직인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고 갈 정도였다. 트럼프를 향한 악담 대부분이 오르반에게도 쏟아졌으며 ‘끼리끼리 어울리는 독재자’ 프레임 역시 덧씌여졌다. 
 
27개 회원국이 6개월씩 교대로 하는 EU이사회 의장국을 헝가리가 맡았을 때(작년 7월1일~12월31일)도 말이 많았다. 이사회 업무를 이끌고 다른 EU 기관과의 협상에서 모든 회원국을 대표하는 임무인데 오르반 총리가 당시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었다.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변형한 구호였다.
 
무엇보다 작년 의장국에 오르자마자 오르반이 ‘평화 사절단’을 자처하며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게 큰 비난을 받았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푸틴을 만난 첫 EU 지도자였다. EU 의회는 오르반의 행보를 “EU 조약과 공동 외교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르반 총리가 EU와 대립해 온 것은 국가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르반은 기독교문명권 국가로서의 전통 가치에 기반한 네이션 스테이트 건설을 추구하고 있어 사실상 ‘반(反)기독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인 정치적올바름주의를 거부해 왔다. EU 주류가 헝가리에 무슬림 이민자들과 LGBTQ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려 한다는 인식이 핵심이다. 헝가리 헌법엔 결혼을 아예 생물학적 이성 간 결합으로 명문화한 구절이 있을 만큼 동성애 등 젠더이데올로기와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헝가리의 이런 면을 EU 주류가 낙후된 차별주의로 낙인찍었으며, 오르반은 EU의 간섭을 1956년 헝가리 자유화를 잔인하게 진압한 소련군에 비교하기도 했다.
 
헝가리는 시종일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반대해 왔다. 러시아의 실존적 위협을 자극할 수밖에 없어 EU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문제를 둘러싼 EU와 헝가리 정부 간 갈등이 이어지자 EU 측은 헝가리에 지원금을 동결시켰고 헝가리 역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EU와 행보를 같이 한 모양새였으나 독자적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았다.
 
작년 5월 초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가 자국 라디오방송에 나와 “유럽의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갈등에 더 깊이 휘말리면서 세계대전 촉발 위험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마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파병론에 대해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후 러시아가 발끈하던 시기였다. 오르반은 이어 “유럽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EU 지도자들은 본인들 말과 달리 전쟁으로 나아가는 조처를 매일 더한다”고 꼬집었다. “헝가리 국민은 제3차 세계대전을 결코 허용치 않겠다”며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자평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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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헝가리는 EU의 대러제재에 불참했다. 오히려 자국 원전단지에 러시아산 원전2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하는 등 러시아와 밀착을 보였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로 불가피한 방위비가 증가해 정부 재정지출 여력이 낮아진다며 서방세계를 향해 비판성 불평을 토로하곤 했다. EU의 주요 회원국들은 헝가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유럽위원회를 포함해 헝가리가 주최한 EU회의를 보이콧했으나 오르반은 굽히지 않았다. “유럽인 대부분의 평화 염원과 달리 EU 지도자들이 갈등 지속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헝가리는 공산독재에 대한 저항이 컸고 소련 해체와 동구권 자유화 과정에서도 가장 먼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수용한 나라다. 1963년생 오르반은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88년 피데스(FIDESZ·청년민주동맹)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 됐다. 1989년 6월 이른바 헝가리혁명(1956) 때 친소정권에 처형된 임레 나기 전 총리와 다른 희생자들의 이장(移葬)을 위한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행사장에서 자유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연설로 전국적 스타가 됐다.
 
오르반은 소로스재단 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 펨브로크칼리지에서 폴란드 출신 헤겔 연구자 지비그니뉴 펠친스키 밑에서 정치철학 공부한 후 1990년 1월 귀국해 첫 선거에 피데스 후보로 나서 당선된다. 임기 도중인 1993년 4월 피데스의 첫 당대표로 뽑혔다. 그가 이끄는 동안 피데스는 급진 자유주의 학생 조직에서 우파 정당으로 변화했다. 산업화와 중산층 만들기가 우선 과제인 단계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역대 산업국가들의 발전 역정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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