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필수의약품 사각에 놓인 구조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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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7-23 00:02:30

필수의약품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공공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필수의약품을 “기본적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비용효율적인 치료 수단”으로 정의하고 각국에 자체 목록 구성과 공급 안전망 마련을 권고해 왔다.

그러나 국내 보건의료 체계에서 필수의약품은 여전히 제도 밖에 있다. 명확한 법적 정의도, 안정적 공급 기반도, 가격 구조의 합리성도 확보되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제네릭(복제약) 품질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우리나라는 복제약 중심의 약가 정책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도모해 왔지만 동일 성분 의약품이라도 제형·첨가제·흡수율 등에 따라 품질 차이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2017~21년 5년간 동일 성분 제네릭 의약품의 시판 후 품질 불일치 사례가 173건에 달했다.

공급 불안정성도 심각하다. 2023년에는 항결핵제 ‘이소니아지드’가 생산 중단되면서 전국 보건소와 병원에서 치료 공백이 발생했다. 이는 낮은 약가와 낙찰 위주 입찰 구조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 해당 품목은 결핵 치료의 핵심 성분이라는 점에서 공중보건 리스크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품절 의약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20~30개 품목의 필수의약품이 반복적으로 품절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가 항생제·항암제·중추신경계 치료제 등 대체 불가능한 치료약이다.

가격 결정 구조도 필수의약품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 보험급여 체계는 원칙적으로 참조 가격 산정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낮은 가격이 고착화된 필수약의 경우 충분한 생산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202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복제약의 평균 약가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약 30% 수준에 그치며 이에 따라 최근 2년간 생산 중단 의사를 밝힌 제약사가 15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에 필수의약품에 대한 정의나 지정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병관리청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일부 공공조달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는 ‘희귀약’ 위주에 머물며 우리나라는 다른 WHO 회원국들처럼 국민 보건에 필요한 ‘기본 필수약물 목록’을 제도화한 국가는 아니다.

필수의약품은 특정 계층이나 희귀질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응급처치용 해독제·항생제·산부인과 필수약 등은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기본 의료 행위의 기반이다. 따라서 보건당국은 이들 약제의 수급을 단순 유통 이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 필수보건 인프라의 일부로 인식하고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안정적인 품질, 예측 가능한 공급, 지속 가능한 가격 구조가 보장되지 않는 필수의약품 체계는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조차 위협할 수 있다. 공공보건의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는 필수약물 정책은 이제 구체적 실행 단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승아 기자 heosa@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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