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이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정규직 전환 움직임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다수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유통업계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전경 ⓒ스카이데일리
최근 문재인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가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형유통업체들이 새로운 형태로 채용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정규직이지만 처우는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이 본격화 될 경우 새로운 형태로 계약한 이들은 대부분 사실상의 비정규직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노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문재인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여론이 적지 않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체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선 현장의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문제점을 개선한 후 시도해도 늦지 않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서류상으로는 정규직, 근로 형태는 비정규직”…유통 근로자 볼멘소리
1일 정부 및 고용업계 등에 따르면 현행 법률에서는 비정규직을 규정하는 조문이 없다. 다만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2002년 7월 합의한 비정규직에 대한 정의가 비정규직을 규정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노사정 합의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재택/가내근로자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일일근로자 ▲단시간근로자 ▲기간제근로자 ▲한시적근로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 나머지 근로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근로자, 사내하청 근로자, 특수고용 근로자 등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은 노사정 합의에서 규정한 비정규직 근로자 형태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규직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이들의 비정규직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통업계 역시 구조상 비정규직 비율이 타 업계에 비해 높은 실정이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세우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각 유통업체에서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대신 중규직, 전문직 등 새로운 개념의 고용형태를 도입했다.
▲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유통업계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당수는 ‘전문직’ 등과 같은 새로운 명칭의 고용 형태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중간 단계에 있어 향후 정상적인 정규직 전환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전경 ⓒ스카이데일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도·소매업 부문 기업의 간접고용을 포함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은 41%에 달한다. 유통업계 특성상 단시간 및 기간제 근로자 등이 많아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다른 업계에 비해 높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비정규직으로 분류되지 않는 무기계약직 근로자, 사내하청 근로자 등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비중이 높다.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해도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경우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유통업계 실질적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시내 대형마트 등을 직접 찾았다. 유통업계 근로자 중 상당수는 ‘전문직’ 등과 같은 새로운 명칭의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정규직 근로자로 돼 있지만 막상 임금·복리후생 등 처우 문제에서는 비정규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형유통마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주환(30·남) 씨는 “마트 계산대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들이나 상품 진열하는 등 잡일을 도맡아 하는 우리 같은 직원들은 사내에서 ‘전문직’으로 분류되고 있다”면서 “보통 정규직 직원들은 ‘일반직’으로 분류되는데 우리 같은 경우 비정규직은 아니지만 이들보다 기본급여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실상 근로형태는 비정규직인데 비정규직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나중에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발생하더라도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해당 마트에서 보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도훈(32·남) 씨는 “대게 대형마트 등에서 근무하는 보안요원들은 해당 마트 소속이 아니라 보안용역업체 소속으로 하청 혹은 파견근로자 형태로 돼 있다”며 “대형마트들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 해도 우리는 소속이 달라 정규직 전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신정아(가명·41·여) 씨는 “대형마트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보니 다른 유통업체들보다는 근무 환경이 좋은 편이다”면서도 “우리는 정규직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보다 기본급여가 적은데, 그렇다고 비정규직도 아니라 뭐라 말 할 처지가 못된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대형마트 직원 조기훈(28·남) 씨는 “마트에는 아르바이트, 시간대별로 근무하는 등 파트타이머 등 다양한 형태로 계약된 근로자들이 많다”면서 “이러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닌 제3의 근로자로서 사실 관심에서 가장 소외돼 있는 이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꼼수 계약 만연…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도 전에 지금의 문제점부터 개선해야”
▲ 자료: 통계청·한국노동사회연구소 ⓒ스카이데일리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했다. 당시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대우로 사회 양극화 현상도 심화됐다. 정부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7년 7월 ‘비정규직보호법’을 제정·시행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을 포함한 법안이다.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기업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2년 단위 재계약, 새로운 고용 형태 신설, 고용기간 미설정 등을 시도했다. 하청 근로자들을 고용하거나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중간 직급이라는 의미로 ‘중규직’으로 불리고 있다. 비정규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규직과도 거리가 멀다.
노동계 및 관련업계 일각에서 정부는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을 시도하기 전에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처우를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고 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상태로는 온전한 정규직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성종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나 무기계약직 근로자 등과 같은 소외받고 있는 근로자들에 대한 정규직화 대책 마련은 아직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많은 유통업계에서는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많다”며 “이들은 소속된 회사와 일하는 장소가 달라 마트를 운영하는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화해도 이들은 소속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온전한 정규직화라고 보기 어렵다”며 “일선 현장의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문제점을 개선한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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