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시겠습니까?” 땅콩을 건네던 승무원에게 불벼락이 떨어졌다. “무슨 서비스를 이렇게 해?” 1등석에 앉은 여성은 소리를 질렀다. 대한항공 조현아부사장은 2014년 미국 뉴욕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KE086 여객기를 되돌렸다. 여승무원에게 화를 내더니 결국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땅콩 회항 사건은 갑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갑질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고질병처럼 수시로 도진다.
DL그룹 이해욱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저승사자처럼 군림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조사한 결과 2014년부터 욕하고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상습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던 운전기사들은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불가리스로 유명한 남양유업은 기업 갑질의 대명사로 불린다. 남양유업은 2013년 지역 대리점에 물건 밀어내기를 강요했다. 남양유업 직원은 너무한다는 가맹점주에게 협박과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갑질은 널리 알려졌으나 권위와 복종의 심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드물다.
권위는 복종을 부른다. 미국 예일대학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1961년 교사 역할 실험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에 대한 답을 말하지 못하면 전기 충격을 가하라.” 밀그램 교수는 아무리 전기 충격을 주라고 지시해도 사람들이 도덕심에 따라서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사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지시를 받자 죽은 듯 보이는 사람에게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다. 비윤리적인 실험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밀그램 교수는 갑질을 당하면 복종하는 심리를 밝혔다.
실험 참가자 40명은 버튼이 달린 기계를 받았다. 버튼을 누르면 학생에게 전기 충격이 전달됐다. 밀그램 교수는 “실험자 3% 정도가 인체에 치명적인 300V(볼트)까지 전압을 높일 것이다”고 예상했다.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450V까지 올릴 가능성은 0.1% 정도로 짐작했다. 실험자들은 예상대로 학생이 괴로워하면 멈칫했다. 그러나 도덕은 돈 앞에서 약했다. “전기 충격을 멈추면 실험 참가비를 줄 수 없다.” 그러자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450V까지 누르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450V까지 누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무려 65%였다. “이럴 수 없다”고 저항하다가 결국 450V까지 누른 사람도 32.5%나 됐다. 자신을 위해 약자를 괴롭힌 사람(26인)은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 고민한 사람(13인)보다 두 배나 많았다. 끝까지 누르지 않은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홀로 저항한 용기가 그나마 가끔 갑질을 용납하지 않는 양심적인 문화를 만든다. 강자(甲)에게서 약자(乙)를 보호하는 사회를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력을 갖고 있다면 우리도 갑질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뇌과학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세계적인 뇌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권력자에게 선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돼 목표 달성이나 자기만족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승자 효과를 톡톡히 누린 권력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계약과 권리에서 우월한 갑(甲)이 벌이는 못된 짓(갑질)도 실상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 똑똑한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대한약사회 갑질이 화제다. 다이소가 2월부터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자 약사회가 제약사에 발끈했다. 3000원과 5000원짜리 영양제가 소비자의 관심을 끌자 약국에서 파는 영양제는 비싸 보인다는 이유를 댔다. 약사회는 일양약품 등이 약국에서 유통하면서 쌓아 온 신뢰·인지도를 악용해서 약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활용품점(다이소)에 공급하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친다며 규탄했다. 공정거래법 제45조 1항은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하지만 약사들 사이에서 다이소에 건강기능식품을 제공한 제약사의 약품을 팔지 말아야 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약사회의 횡포에 당황한 일양약품은 다이소 철수를 선언했다. 일양약품 소식에 소비자 못지 않게 약사들도 당황했다. 왜냐하면 정부가 약사회의 갑질을 감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부터 약사회에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약사회와 일양약품은 외압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약사회 신임회장이 제약사와의 간담회에서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권영희 회장 간담회 이후 약사회는 제약사 마케팅을 감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소비자에게서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의약분업 정책 구호는 의사와 약사의 업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식품은 누구에게? 다이소는 물론이고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도 팔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에 갑인 약사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 똑똑한 사람들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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