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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서울시 주도 아래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지어졌다. ‘안전’을 강조해 지은 이 아파트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외관이 새 아파트처럼 깨끗한 모양을 보였다. 이 아파트는 총 24개 동, 1790세대 규모다. ⓒ스카이데일리
서울시 주도로 1971년 완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한국 고층 아파트의 효시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단지는 지하철 9호선 샛강역 3번 출구 방면에 있다. 출구에서 한강 방면으로 약 12분 정도 직진해서 걷다보면 아파트 출입구가 보인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생활 편의 시설이 좋은 편이다. 단지 안에는 공원, 천주교 성당, 유치원이 있으며, 단지 주변에는 여의도 초·중·고등학교가 인접해 있다. 총 24개 동 중 1층에 상가가 있는 2·3·4·7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동들은 모두 남향으로 지어졌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장점이 있다. 이중 23동과 24동은 복도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경을 썼다.
이 아파트 단지는 단점 또한 있다. 23동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한강이 보여도 집안에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복도에서만 보인다”며 “여름에 강바람이 불어 시원하긴 하지만 원효대교 아래에서 모이는 폭주족들과 한강에서 사람들이 하는 폭죽놀이 때문에 소음도 심하다”며 이는 한강조망원이 있어도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라고 전했다.
개별난방이 아닌 중앙난방을 하고 있어서 난방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도 단점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아파트 한 주민은 “봄과 가을에는 15만원 정도의 관리비가 나오지만 겨울에는 25~30만원 정도 관리비가 청구된다”고 말했다.
총 24개 동, 1790세대, 12층(일부 13층) 높이로 구성된 이 아파트 분양면적은 60.96㎡(약 18평), 79.24㎡(약 24평) 118.12㎡(약 38평). 156.9㎡(약 48평) 등 네가지 타입이었다.
인근부동산 관계자는 “5년 전 재건축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60.96㎡가 10억원의 시세가 형성됐다”며 “현재는 60.96㎡가 최저 6억5000만원에서 거래되고 있고 있다. 156.9㎡의 경우는 현재 약 10억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추억의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던 튼튼한 아파트
올해로 지어진 지 43년이 지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내·외부에 균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관 역시 깨끗해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파트 같아 보였다.
현재 시범아파트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아파트가 지어질 때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서울시에서 최고로 좋은 골조로만 만들었다”며 “지금도 못이라도 하나 박으려고 하면 못이 안 들어가 애를 먹는다”고 말해 시범아파트의 견고함을 확인시켜줬다.

▲ 1971년 13층 높이로 지어진 시범아파트는 당시 파격적으로 엘리베이터도 설치하는 등 고급아파트를 함께 지향했다. ⓒ스카이데일리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층부터 엘리베이터가 운영됐던 최초의 아파트다. 엘리베이터 설치 국내 최초의 아파트 타이틀은 ‘세운상가 아파트’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세운상가 아파트는 5층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 됐었던 반면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층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 됐다.
10년 째 거주중인 한 주민은 “요즘이야 엘리베이터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처음이라서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며 “지금은 없지만, 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때는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모래 벌판에서 금융의 메카로 변한 여의도
지난 1971년 서울시는 ‘여의도종합개발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여의도를 ‘아름다운 신시가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백사장에 불과했던 여의도를 토지 작업을 해 분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나 건물을 지으려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고심 끝에 직접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 여의도에 처음 지어진 ‘시범아파트’가 인기를 끌자 민간업체들이 줄지어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1974년 들어선 삼익아파트를 필두로 한양아파트, 은하맨숀아파트, 대교아파트, 삼부아파트, 라이프아파트가 연이어 지어졌다. ⓒ스카이데일리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지어질 당시에는 가장 큰 158.7㎡(48평)가 571만원, 가장 작은 60.96㎡(약 18평)가 212만원에 분양됐다. 그러나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인기가 치솟으며 아파트 매매 가격은 고공 행진을 시작했다. 입주를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158.7㎡의 가격은 기존 분양가의 2배를 넘었다.
시범아파트가 인기를 끌자 민간업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여의도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1974년 삼익주택이 지은 삼익아파트를 기점으로 한양아파트, 은하맨숀아파트, 대교아파트, 삼부아파트, 라이프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다.
1970년대 후반 중동건설 여파로 국내로 유입된 유동자금들이 여의도 아파트로 몰리면서 한때 투기바람까지 불었다. 1977년 분양된 목화아파트의 경우에는 쳥약율이 45대 1까지 몰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서울시가 주도한 여의도 개발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된 배경에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분양 성공 신화가 있었다.
아파트가 지어진 후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됐고, 1979년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또한 국내 방송 3사 본국과 63빌딩이 연이어 지어지면서 여의도는 금융과 방송의 메카로 변모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 ‘와우시민아파트’ 붕괴로 인해 국민 정서에 아파트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말끔하게 씻어준 최초의 고층 아파트로 자리재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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