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환경은 큰 변화 속에 있다. 뉴스는 더 짧아졌고, 더 빨라졌으며, 더 자극적인 경로를 타고 유통된다.
한국에서도 포털 뉴스 이용은 줄고 동영상과 숏폼 뉴스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뉴스 전체 신뢰도는 30% 수준에 머물고, 인플루언서 뉴스 소비 확대는 정보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홍보인이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조직의 메시지는 설명이 아니라 해법이 되지 못하고 곧바로 또 다른 논란의 재료가 되기 쉽다.
이에 홍보인의 덕목으로 꼽히는 ‘냉철함’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오늘의 홍보는 조직의 입장을 예쁘게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정책과 조직의 언어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공공 커뮤니케이션을 정치적 선전과 구분되는,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듣고 응답하는 공공선의 기능으로 평가했다. 학계 역시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를 조직과 바깥 환경 사이를 잇는 경계관리자, 곧 전략적 연결자로 설명한다.
문제는 이 일을 수행하는 현장이 갈수록 고감정·고속도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WHO는 지난해 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와 관련 평가를 통해 위기소통의 최우선 목표를 ‘대중의 신뢰를 구축·유지·회복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 신뢰가 흔들리면 정확한 정보도 소음이 된다.
감정노동과 번아웃 관련 연구는 PR과 저널리즘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이 높은 스트레스와 감정의 소진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냉정함이 개인의 미덕을 넘어 제도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보인의 밤’ 행사의 마무리이자 ‘홍보실의 낮’ 세션에서 도출된 결론도 바로 이 지점에 맞물려 있다. 홍보인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팩트와 전략에 기반해 일할 수 있으려면, 이제 우리 사회가 이들의 역할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자극적 의혹과 속보 경쟁이 지배하는 소통 환경일수록, 냉철한 홍보는 조직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보 품질을 지키는 안전장치가 된다.
국민을 향한 첫 번째 제언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홍보를 더 이상 ‘가림막’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홍보는 불리한 사실을 감추고 유리한 사실만 포장하는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제로도 그렇게만 기능하지 않는다. 복잡한 사안을 설명하고, 오해를 걷어내고, 조직의 공식 입장과 사실관계를 정리해 사회적 해석의 혼선을 줄이는 것이 홍보의 본령이다. 숏폼과 인플루언서 중심의 정보 유통이 빨라질수록, 국민에게 더 필요한 것은 자극적인 첫 장면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공식 설명을 끝까지 확인하는 태도다.
언론을 향한 두 번째 제언은 미디어 관계의 본질을 다시 진단해 보는데 있다. 홍보인은 기사를 구하고 한쪽이 문을 열어주는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비판을 감내하는 실무 파트너라는 점을 인정해 달라는 주문이다.
최근 연구들은 저널리즘과 PR이 공적 담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점점 더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관계의 핵심 역시 관계의 위계가 아니라 상호 필요의 관리에 있다. 머크랙은 미디어관계를 기자와의 관계 구축을 통해 얻는 보도라고 정의하며, 기자에게도 PR은 중요한 이야기와 자료를 찾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감정적 압박과 단정적 추정 취재가 남기는 것은 좋은 기사보다 닫힌 문과 위축된 설명뿐이다. 기자 절반이 번아웃으로 퇴사를 고민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필요한 것은 압박이 아니라 맥락을 복원하는 취재다.
여기서 말하는 ‘호흡이 긴 저널리즘’은 속도를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속보를 넘어 인과와 전후 맥락을 짚고, 문제를 둘러싼 구조를 설명하며, 독자가 판단할 재료를 충분히 제공하는 저널리즘을 뜻한다. 슬로 저널리즘 연구는 속도와 수익 압력이 얕은 보도와 허술한 설명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고, 설명·솔루션 저널리즘 연구는 깊이 있는 기사일수록 독자의 이해와 참여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홍보 역시 그런 기사 앞에서는 방어보다 설명으로, 회피보다 자료로 응답할 여지가 커진다.
정부를 향한 세 번째 제언은 좀더 구체적이다. 공공 홍보를 정권의 치적 홍보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행정 서비스로 재정의해 달라는 요구다. OECD는 공공 커뮤니케이션을 선거와 정파 중심의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구분하고, 시민에게 정보를 전달하며 경청하고 응답하는 기능으로 정의한다. SIGMA 역시 공공 정보담당자는 정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과 배경을 제공하는 사람이며,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성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문구 통제가 아니라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시스템 설계다.
그 시스템의 핵심은 디지털 소통 인프라다. 조직마다 흩어진 데이터를 공유하지 못하고, 부처마다 각자 다른 언어로 설명하면서, 위기 때마다 임시 지시만 내려보내는 구조로는 리스크 관리도, 신속한 팩트체크도 불가능하다.
공공 홍보는 선전의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부처마다 정보가 흩어지고 설명 기준이 다르면, 국민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OECD가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핵심으로 데이터 공유와 협업의 표준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홍보인이 냉철함을 잃는다는 것은 한 조직의 대응이 서툴러진다는 뜻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소통망 안에 거대한 노이즈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사실과 전략을 중심에 두고 일해야 할 전문가를 감정적 소모품으로 다루는 순간, 국민은 더 혼란스러운 정보를 접하고, 언론은 더 거친 속도전에 몰리며, 정부는 더 쉽게 불신을 산다. 홍보인을 건강한 소통의 전문가로 바로 세우는 일은 특정 직군을 두둔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신뢰 자산을 복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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