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날 기자가 점심을 먹고 자주 걷던 산책길의 나무들이 일제히 가지치기를 당했다. 8월이 지나고 9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길을 다시 찾지 않는다. 그곳을 그토록 애용했던 이유는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던 나무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바로 이처럼 무참히 잘려 나간 가로수들이다. 가로수 가지치기의 표면적 이유는 명확하다. 전선 마찰 방지, 건물 간판 가림 해결, 그리고 태풍이나 강풍 시 쓰러짐 방지다. 또한 나무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나무의 가지는 잘리고 있다. 애용하던 길에 있던 나무의 가지들은 키 186cm인 기자가 걸을 때 고개를 잠깐 숙이기만 하면 될 정도의 높이에 있는 나무들까지 예외 없이 가위질을 당하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도시숲이 여름철 한낮 폭염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했다고 지난 7월 27일 밝혔다. 과학원이 서울 도심과 도시숲 유형별로 여름철 기온과 습도를 연속 관측한 결과 도시숲의 기온이 도심보다 기온이 최대 1.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활엽수림과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의 기온 저감 효과가 더 컸는데 이는 여름철 무성해진 나뭇잎과 울창한 수관(가지와 잎이 우거진 윗부분)이 강한 햇빛을 차단하고 나무의 증산작용(식물 내의 물이 수증기 형태로 변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현상)이 주변 공기의 열을 식혀주기 때문이라고 과학원은 설명했다. 즉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건물이나 양산이 만들어주는 그늘보다 더 시원하다는 이야기다.
잘려 나간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1년 사이에 다시 자랄테니 내년에 또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줄기가 잘려 나간 자리는 병원균과 해충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급격하게 자라난 부실한 가지들은 오히려 바람에 더 취약해져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이렇게 나무들이 병들어 죽게 된다면 폭염 저감 효과는 급감하고 도시는 더욱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나무의 고유한 수형을 유지하며 생태적 기능을 보존하는 친환경적이고 세심한 수관 관리 방식을 도입한 지 오래다. 실제로 10월 말 스페인 여행을 했을 당시 선글라스를 써야 할 정도로 햇빛이 강했던 날 가로수 그늘에서 잠깐 한숨을 돌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들에게 가로수는 언제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도시의 일원이었다.
가로수는 달아오르는 콘크리트를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친환경 에어컨이다. 나무를 난도질하는 방식의 가지치기보단 나무의 원형을 유지하고 최소한의 가지만 치는 것이 사람과 나무 모두에게 이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분별한 삭발식 가위질 대신, 나무와 사람이 진정으로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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