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성북구 한성대입구와 그 인근에는 소극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순수예술과 정극을 하는 극단들의 아지트라고 불린다. 연습실을 개조해 소극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대학로는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상업화된 연극들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돌쌓기 극단의 연습실 겸 극장 ⓒ스카이데일리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삼선교)이 상업화에 물든 대학로를 대신해 한국 연극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상업화로 물든 대학로 떠나는 연극인…문화예술인의 메카로 떠오른 성북구
오래전부터 대학로를 떠난 극단과 연습실이 자리를 옮겼고, 최근에는 소극장이 속속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종로구 대학로에서 성북구로 넘어온 문화예술인만 1000명이 넘는다.
지하철4호선 한성대입구역 근처에는 ‘연극인 전용 공공임대 주택’(배우의 집)이 있다. 이곳은 배우들이 시세 대비 20%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할 수 있다. 현재는 또 다른 곳에서 배우의 집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대학로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방지의 일환으로 한성대입구에 창작연극지원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센터에는 소극장 20여개가 들어갈 예정이다. 건립 예정 부지는 성북구가 문화적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1997년 도시계획시설 공원을 해제하고 문화시설로 변경한 곳이다.
성북구에서도 ‘연극도시 성북’을 만들겠다는 기치 아래 다양한 행사를 진행중이다. 구에서는 지역주민과 극단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성북페스티벌’이다.
▲ 과거 한성대입구는 저렴한 임대료로 극단들의 연습실이 많았던 곳이다. 최근에는 연습실을 개조해 극장으로 활용하며 지역주민들을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극단 ‘소금창고’의 연습실 겸 극장(위)과 한성대입구 근처의 연습실(아래) ⓒ스카이데일리
극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성대역 인근에는 극장들이 시나브로 생기고 있다. 한성대 정문 바로 앞에는 ‘돌쌓기극장’이 있다. 이 극장을 사용하는 극단은 ‘사회참여극단 돌쌓기’다. ‘돌쌓기’에서는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연극 행사를 기획한다. 최근에는 지난달 29일에 개최된 춘천인형극제에 참여했다.
지난달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한성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과 인형을 만들어 지진대피 요령을 콘셉트로 공연하기도 했다. 오는 12월에는 삼선동 주민 4명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당신의 연극을 만들어드립니다’ 공연이 예정돼 있다.
‘돌쌓기’의 객원 멤버 BK씨는 “지난 2013년 극장을 마련하고 활동하기 시작해서 이듬해 겨울에 활성화 됐다”며 “이곳은 연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마을극장이자 음악 공연, 단편영화 상영 등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성대 인근 골목 지하…프리랜서 배우와 막노동 하는 연출가
한성대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골목 사이사이에는 극단 연습실이 있다. 극단 ‘소금창고’의 연습실 겸 무대는 삼선교로에 마련돼 있었다. 토박이가 아니면 극장이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만큼 눈에 띄지 않는 위치의 지하에 자리를 잡았다.
‘소금창고’ 단원 C씨는 “연습실에서 극장으로 함께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됐고, 지금까지 4회 공연을 했다”며 “대관료가 비싼 대학로에서 매번 대관해서 공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장소에 들어오는 인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관객을 많이 받을 수 없다”며 “관객수는 홍보에 따라 다르지만 (연습실 겸 극장으로 사용하는) 이곳은 인근 주민들이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 소극장 ‘봄’에서는 극단 필통의 ‘비행소녀’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비행소녀는 새가 돼 외로운 곳을 떠나 이상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 밴드연주를 하고 무대를 간소화 해 어디서든 공연을 올릴 수 있게 기획했다. ⓒ스카이데일리
단원 E씨에 따르면 현재 지방 공연 때만 정부 지원을 받는다. 지방 사람들에게 문화 혜택을 주면서 극단도 돕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2년에 한 번밖에 받을 수 없어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E씨는 “비록 예술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공연을 하면 마이너스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관료 지원이 절실하다”며 “유럽에서는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배우들이 많고 예술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고 토로했다.
한성대학교와 한성대입구역 사이 대로변에는 소극장 ‘봄’이 있다. 이곳에서는 창단 10년차 극단 ‘필통’이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필통’은 작품성을 중시하는 순수 예술 연극을 하는 극단이다.
필통은 내달 27일까지 열리는 제11회 서울 창작공간 연극축제에서 선정돼 지난 14일 작품 ‘비행소녀’를 올려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그러나 필동처럼 순수예술을 하는 많은 극단들은 생계가 어렵다. 때문에 단원들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 배우는 ‘라이어’나 ‘옥탑방고양이’처럼 유명한 작품에 출연하는 계약을 맺는다. 보통 연극공연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야 흑자로 전환되기 때문에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들은 경력이나 나이에 따라 계약금이나 회당 페이를 받는다.
필통 관계자 J씨는 “계약기간 동안 페이를 받을 수는 있지만 몇 개월간 똑같은 공연만 해야 하는 것은 단점이다”며 “극단 활동과 프리랜서 배우 활동을 병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극단에서 활동하면 인적 네트워킹을 형성해 서로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현재 한성대입구에는 연극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배우의 집)이 공사 중이다. 대상은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저소득 연극인이다. 배우들은 시세에 비해 20%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할 수 있다. ⓒ스카이데일리
연출가 D씨는 “연극이 좋아 연출을 하는데 돈이 없어서 중간에 쉬고 막노동을 했다”며 “배우나 스텝들이 돈을 번 후에는 다시 극단으로 돌아와 공연을 한다. 연극을 하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막노동을 하러 가야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시에서 극단에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대관비나 제작비 정도지 배우들이나 연출가 등의 인건비는 책정을 하지 않는다”며 “인건비는 지원금 우선순위 자체에서 빠져있는 인식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북동에 있는 극단 관계자들은 ‘지원금 문제’와 함께 상업적인 공연만 성행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극배우 L씨는 “상업적인 공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상업적인 공연만 찾게 만드는 공연 시스템이 문제다”며 “상업적인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이 이후 정극이나 순수예술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정극이나 순수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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